시공사 상대 분쟁건 수임 `영업맨` 자처…1개단지만 확보해도 6개월은 일감 보장
"생계형 변호사들이 소송 부추겨" 비판도
기사입력 2013.06.12 17:35:58
김웅구 변호사(37ㆍ가명)는 비가 내리던 12일에도 경기도 화성의 한 아파트 단지로 출근했다. 사무실은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이지만 사무실로 가는 날은 일주일에 많아야 이틀이다. 김 변호사의 일과는 사실 영업사원에 가깝다. 오전 10시께 출근해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 사무실을 무작정 찾아가서 소송을 할 만한 것이 없는지 묻는 식이다.
대부분 약속이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가는 것이다. 얘기가 잘 풀리면 점심도 하면서 아파트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다.
김 변호사는 "왜 변호사가 여길 왔느냐며 의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하루에 두 곳 정도 방문하고 나면 저녁이 돼서 서초동엔 가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5년 전 개업한 김 변호사는 한동안 이혼을 주로 맡았다. 그러나 2011년부터 사무실 손익분기점도 맞추지 못하는 달이 많아지면서 작년부터는 시공 하자 소송에 주력하게 됐다. 과거엔 브로커가 중간에서 `기획소송`을 중재해줬지만 여론이 워낙 나빠진 탓에 이제는 김 변호사가 직접 돌아다니고 있다.
김 변호사는 "수임이 힘든 변호사들은 상당수가 아파트 관련 소송에 관심을 두고 있을 것"이라며 "아파트 입주민들을 만나러 돌아다니는 변호사가 모르긴 몰라도 100명은 넘을 것 같다"고 전했다.
`하자 소송`이란 아파트에 문제가 있으니 이를 보상해 달라며 시행사 등을 상대로 제기하는 것이다. 하자 소송을 찾아 다니는 변호사가 늘어난 데는 이달 중순 이뤄지는 법률 개정의 영향이 크다.
19일부터 시행되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령`에 따르면 아파트 분양을 받은 사람이나 입주자가 기존 시행사 외에도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소기업인 시행사와 달리 대형 건설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가능해짐에 따라 관련 소송 건수도 늘고 소송가액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나 하자분쟁심사위원회 등에 제기된 하자 관련 분쟁이 급격히 느는 것만 봐도 관련 소송의 증가 추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전문 분야`를 인증해주는 전문변호사 등록이 아파트 관련 분야에서 가장 많은 것도 이를 방증한다. 변협에 따르면 2012년 전문 변호사 등록(1019건) 중 1위와 2위는 각각 120건과 106건인 건설과 부동산이었다. 2011년 전문변호사 등록 때에도 건설과 부동산이 1ㆍ2위를 차지했다.
박병채 변호사(부동산 전문)는 "하자 관련 소송이 늘면서 이 분야에만 집중하는 변호사들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호사들이 하자 소송에 주력하는 것은 수임하면 일단 6개월~1년간 일거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또 소송과 별도로 벌어들이는 상담료(1시간 10만원)도 적지 않다. 여기에 단지 주민들과 친분을 쌓아 잠재적 고객을 확보하는 효과도 있다.
경력을 위해 소송에 나서는 사례도 있다. 12일에도 경기도 아파트 단지 두 곳을 돌았다는 한 변호사는 "당장 돈은 안 돼도 경험도 해보고 이름도 알리는 차원에서 투자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하자소송을 시작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은 20~30% 선이란 게 변호사들 설명이다. 이렇다 보니 법조계 안팎에서는 "변호사들이 수임을 위해 무리하게 소송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 남부지법의 한 판사는 "아파트 단지 한 곳의 하자 소송에 보통 억대 돈이 오가다 보니 소송 착수금, 인지대와 송달료도 받지 않고 대출을 받아 감정료까지 내주면서 수임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비용 부담이 있으면 대부분 아파트 주민들이 소송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하자보수업체와 변호사가 초기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재판에서 이긴 뒤에 받는 승소액의 4%가량이 수익이다.
또 다른 한 판사도 "변호사가 늘면서 불필요한 소송도 느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먹고살기가 팍팍해진 것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2년 8월 기준 변협 등록 변호사는 1만4596명으로 2003년(6150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법조계에 따르면 2003년 서울 지역 변호사의 월평균 수임 건수가 3.2건이던 것이 지난해엔 1.8건으로 줄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변호사 6명 중 1명이 월수입 200만원 이하였다. 지난해 변협 통계에선 2000명이 넘는 변호사가 휴업했거나 개업도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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