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은 개혁정치 엔진… 사람을 키워야 한다” “광주시장이든 전남지사든 출마안 해”
천정배 변호사. 1954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 수석 합격, 경기도 안산서 국회의원 4선, 참여정부 법무부장관 등…. 정치인으로선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 진학 후 40여 년을 서울서만 산 그가 지난 4월8일 광주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광주 사람’이 됐다. 당시 지방선거 출마설 등 정치적 해석이 난무했지만, 그의 답변은 비교적 일관됐다. “전남지사 출마 않는다.”, “민주당 터줏대감이다.” 안철수 세력으로의 합류 불가, 광역단체장 불출마로 읽혔다. ‘광주 생활’ 100여 일이 지난 현재도 그 생각엔 변함없을까? 지난 23일 동구 지산동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법무법인 해마루 광주분사무소)에서 천정배 변호사를 만났다.
“여의도와 달리 나같은 사람이 주류”
100여 일 동안의 광주에서의 생활이 궁금했다. “법원 근처에 원룸을 얻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라야 집사람하고 달랑 둘이죠.” 슬하에 두 딸이 있는데, 장녀는 결혼했고 차녀는 외국에서 근무중이라고 했다.
“우왕좌왕하다가 금방 시간이 간 것 같습니다.” 평생 살아온 삶터를 옮겨 새로 적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터. “지난 100일을 돌아보면, 초창기땐 서울 왔다갔다하느라 볼일 못봤어요. 거의 하루 걸러서 서울을 왕래했으니까요. 그래도 지금은 좀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일주일을 서울에 머물기도 하고, 반대로 광주서 일주일 내내 생활하기도 하고요.”
광주엔 왜 왔을까?
“재충전할 기회가 주어졌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 여의도 정치에 얽매일 필요 없는 ‘자유로움’이 결행의 배경. 2012년 낙선이 기회가 됐음이다. 19대 총선에서 그는 4선의 지역구(경기도 안산)를 떠나 서울 송파을에서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30년 동안 서울에서 변호사, 정치인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지칠만도 하죠. 고향 사람들 만나고 얘기나누고 싶었어요. 호남 문화에 흠뻑 취하고, 빠지고도 싶었고요.” 이 점에서만 보면 광주의 100일은 ‘120% 만족’이라고 자평했다.
정치적인 고민도 있었다. “무너진 야권 세력을 다시 일으켜 희망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호남에서 길을 모색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살아보니 광주는 참 편안했다고. “여의도 정치라는 건 어찌됐든 여야간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호남에서는 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류 아닙니까? 서울 가면 우리가 야당이고, 생각이 달라 논쟁도 많지만 호남에선 포근해요.”
‘광주 사람’ 천정배의 일상은 사람 만나기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을 그야말로 닥치는대로 만납니다. 주로 정치인보다는 시민사회분야 쪽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편이에요.”
본업인 변호사 활동도 소홀히 할 수 없다. “16~17년 정도 현장을 떠났다가 다시 시작했는데. 변호사라는 게 취미 비슷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굉장히 준비하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죠. 과거의 열정을 회복하려 노력중입니다.”
“민주당 환골탈태 못하면 호남서 큰 일 날 것”
각오한 일이었지만 민주당에 대한 지역민의 질타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당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가 극히 험악하다는 걸 잘 알고 있죠. 그래도 직접 대놓고 침 뱉겠습니까? 저에게는 ‘잘해라’ 정도의 질책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간접적으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새누리당 이전에 민주당 심판론이 팽배해 있다고 들었습니나. 안철수 의원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알고요. 다른 수가 없겠다싶어요. 완전히 바꾸고, 기득권 버리고, 분명한 국가비전과 국민의 삶을 향상시킬 구체적인 정책들을 개발하고 보여줘야죠.”
이같이 위기에 처한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나설 생각은 없는 걸까? ‘전남지사 불출마’, ‘(민주당 터줏대감으로서) 안철수 세력 합류 불가’ 등을 수차례 공언해 운신의 폭을 좁힌 천 변호사에게 남은 선택지(가능성)는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 출마가 유일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확고했다. “광주시장이든, 전남지사든 출마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내년 지방선거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광주시장이든 전남지사든 내년 지방선거에서 뽑아야할 후보는 단순히 지방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호남에서 민주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이 지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전국적이죠. 민주당의 텃밭으로,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지역이니까 전략적이고 계획적이고 과감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이 호남 아닙니까? 내년 지방선거에 임하는 민주당이 호남에서 얼마나 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줄지는 당의 장래와 직결된 문제라고 봅니다.”
안철수 세력과도 선을 그었다.
“안철수 의원 세력이 정치발전을 위해 좋은 역할을 해주기 기대합니다. 하지만 저는 민주당의 터줏대감으로 정치발전을 위해 활동할 겁니다. 저와 안철수 세력과의 관계에 대해 여러가지 얘기가 나오지만 억측에 불과합니다. 그분들과 따로 접촉해본 적 없습니다.”
그가 이토록 지방선거와 거리를 두는 건 “중앙정치에서 할 역할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을 통합해 새로운 개혁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이같은 사명감의 발로다.
“어느 정도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간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다만 10월 재보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밖엔 새누리당이라는 강적이 버티고 있는 현실입니다. 의도가 좋다고 해도 민주당과 안철수, 이렇게 야권 세력이 분열된 상태로 대처해선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함께 힘을 합해 새누리당과 겨뤄도 버거운 경쟁일텐데, 야권이 분열돼 3자구도가 되면 지방선거도 그 이후도 처참한 꼴 당할 것 같다는 게 제 걱정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대선 당시 ‘이기기 위해 합치는’는 선거공학적 접근은 하지 않겠다”고 한 걸 상기시키자, 천 변호사는 “묻지마식 통합이나 지분을 나누자는 것도 아니다”면서 새로 탄생할 신당이 담아내야 할 개혁정치의 모델을 설명했다. 당의 이념과 운영 시스템, 두가지 측면의 밑그림이다.
우선 이념. “개혁신당은 뚜렷한 정치색,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함께 논의해야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보자면 경제민주화,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철폐 등 큰틀에서 합의 가능한 아젠다가 있을 겁니다.”
다음은 당 운영 시스템. “정당개혁의 요체는 정당민주주의이고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구현돼야 합니다. 당내 의사 결정은 전당원 투표로 이뤄지고, 공직후보자는 전면적인 상향식 공천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혁신당 만들어 새누리 재집권 막자
천 변호사는 “이런 이념과 시스템을 갖춘 당을 만들어 개혁정치세력을 총 집결해야 한다”면서 “이는 대한민국의 독점세력을 대변하는 새누리당의 확대와 재집권을 막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천 변호사는 이같은 개혁신당 구상이 자신이 평생 지녀왔던 정치적 신념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 그가 정치인생에서 강조했던 건 두가지로, 개혁정치와 이의 선결요건인 개혁정치세력의 집권이라고 했다.
“정치 개혁해서 민생 안정시키고, 정의 구현하고, 남북간 화해협력의 길로 이끄는 것”이 개혁정치의 요체다.
단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개혁정치세력의 집권이 필수적.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의미가 컸던 게 이 때문이고, 이후 두 번의 실패가 뼈아팠던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지방단체장 출마에 선을 긋고 중앙정치무대에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천 변호사의 의중이 이 대목에서 분명해졌다. 야권의 차기 집권을 위한 준비에 정력을 쏟고 있음이다.
구체적으로 삼박자가 갖춰져야 집권이 실현된다고 말했다.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이 첫째, 국민의 개혁정치 열망을 대변할 세력이 둘째, 국민적 열망을 대변할 지도자가 세번째다.
천 변호사에 따르면, 첫번째 조건은 이미 완성돼 있다. 문제는 둘째와 셋째 요소.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이기지 못한 건 둘째·셋째 요소가 확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천 변호사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 이어질 총선·대선 국면에서 세력과 지도자를 준비해야 정권을 찾아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천 변호사는 “개혁을 이끌어갈 신망받는 지도자를 준비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면서 “기존 인물 중에서 성장시키거나 새로운 인물도 발굴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호남지역 인물 발굴이 시급하다고 했다. “DJ이후 호남 쪽의 세력이나 인물이 많이 약화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호남은 잘못하면 한국사에서 소외되고 차별받을 소지가 많은 지역입니다. 지금 바로 그런 우려가 현실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고요.”
호남 인물을 키워야 할 이유는 또 있다. “호남은 개혁정치의 엔진이고 견인차입니다. 호남이 약화되는 건 대한민국 전체 개혁정치의 성공가능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죠.”
이어지는 그의 다짐. “이젠 호남 출신도 잘 키워야 합니다. 후배들 중에서 한국을 이끌어 갈 만한 지도자감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저도 호남 출신의 한사람으로서 분발하겠습니다.” 조련사에 그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해서 그에겐 “광주시장 출마할 겁니까?” 보다는 “차기 대권에 도전할 것입니까?”를 묻는 게 더 적절해 보였다.
글=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사진=함인호 ha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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