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사건 보고 재판하지 변호사 보고 재판 안해요"

“저에게는 내세울 만한 장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구태여 꼽아 본다면 기다릴 줄 알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인데 기다리고 기다려서 우리 나이로 64세(만 63세)인 판사 정년을 맞게 됐네요.” 24년 동안의 법관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한 김진상(63·사법연수원 16기)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열린 퇴임식에서 이같은 소회를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고등부장 승진에서 탈락하면 퇴직하는 관행을 깨고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정년을 맞았다. 지방부장판사로 정년을 채운 판사로는 김 부장판사가 사법사상 일곱번째다. 18일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로 303 광주지법 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는 김 부장판사의 가족들과 광주고·지법원장, 법관들과 직원 300여명이 참석해 정년퇴임을 축하했다. 동향이고 같은 대학을 나온 이귀남 법무부장관도 화환을 보내왔다. 김 부장판사는 늦깍이 판사다. 1984년 36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39세에 광주지법 판사로 임관됐다. 법관생활을 해온 24년 동안 2년간 전주지법 남원지원장으로 재직한 것 외에 죽 광주에서 법관생활을 해왔다. “개인적으로는 한 곳에 오래 있으니 우선 아이들 교육문제나 가정생활이 안정됐어요. 다만, 아는 사람이 당사자로 재판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서너 차례 정도 회피를 했습니다. 향판이 지역 변호사들과 유착될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이 염려하는데 판사는 사건을 보고 재판을 하지 변호사를 보고 재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걱정은 기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렇게 정년을 맞아 퇴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는 김 부장판사의 아들 용규(28·〃38기)씨는 현재 공군법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에 김 부장판사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아들이 주말마다 유수한 로펌에 있는 선배들을 만난다기에 조심스럽게 ‘로펌 제의를 받았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제가 아들한테 ‘한 집안에 변호사가 한 사람이면 되지 둘이나 필요하냐’고 했어요. 제가 올해 정년을 맞아 변호사 활동을 하게 될텐데 아들은 판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력하게 권했죠.” 김 부장판사는 퇴직 후 로펌행을 택했다. 퇴직 직전 1년간 근무한 곳에서 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한 전관예우법에 따라 광주지법 사건은 못 맡게 된다. “혹시 광주지법 사건 선임계에는 제 이름이 안 들어가지만 실질적으로 광주지법 사건을 다뤄야 한다면 로펌에 안 가겠다고 먼저 이야기를 했어요. 로펌 쪽에서도 그럴 일은 없다고 확답을 해서 로펌에 가게 됐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은 없다고 한사코 손사레를 치면서 “법대로 하면 된다”는 말만 남겼다. 그는 퇴임식에서 “법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심신이 고달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정말로 행복한 나날이었다”며 “외양만 판사 사모님이지 실속은 별 볼일 없었어도, 그동안 묵묵히 참아 준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정수정 기자 suall@lawtimes.co.kr